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리오 아디토레 (문단 편집) === 작중 이전 === 1434년 3월 19일 [[토스카나]] 지방의 몬테리지오니에서 태어났다. 당시에는 [[시에나 공화국]] 영토. || [[파일:ACI_Mario_baby.png|width=100%]] || || {{{#808080 잠을 자는 마리오 아디토레와 빌라에 침입한 용병을 묘사한 그림, [[어쌔신 크리드: 이니시에이츠]] 中}}} || 그런데, 마리오가 태어난 그날 밤 [[아디토레 가문]]을 처단할 목적으로 고용된 한 피렌체인 용병이 빌라 아디토레에 침입했다고 한다. 당시 마리오를 낳는 데 도움을 줬던 산파들은 마리오의 어머니를 보살피고 있었는데, 이 용병이 마리오가 누워 있는 방으로 들어가더니 '''돌연 의문사했다.''' 당시 그 방에는 갓난아기인 마리오밖에 없어서 상황을 설명해줄 목격자도 없었고, 그에 따라 이 사건은 미궁으로 남게 되었다.[* 이 일화는 [[어쌔신 크리드: 이니시에이츠]]에서 밝혀졌는데, 데이터베이스에도 해당 사건과 관련된 내용은 해당 내용이 전부다. 이에 따라 이 용병의 죽음에 대해서 '또다른 암살자가 미리 대기하고 있었다', '심장 마비가 왔다(...)' 등등 각종 추리들이 난무했으나, 그냥 데이터베이스에 짧게 언급된 내용일 뿐이고 [[어쌔신 크리드 3]]을 기점으로 아디토레 가문에 대한 내용이 더 이상 나오지 않아 시간이 흐르면서 팬들 사이에서는 점차 잊혀져 가는 사건이 되었다.] 1436년 5월 3일, 마리오가 2살일 때 남동생 [[지오반니 아디토레]]가 태어났다. 이 둘은 암살자 가문에서 태어났기에 자연스럽게 암살자의 길을 걷게 된다. || [[파일:ACI_Battle_of_Anghiari.jpg|width=100%]] || || {{{#808080 Leonardo da Vinci[* [[레오나르도 다 빈치(어쌔신 크리드 시리즈)|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그림이긴 하나 위 그림은 독일 화가 [[페테르 파울 루벤스]]가 그린 복사본이고 현재는 레오나르도가 연습용으로 그린 스케치들만 남아있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가 [[피렌체]]의 베키오 궁에 있는 500인의 방에서 프레스코화 경연을 벌인 유명한 일화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이며, 그 때 레오나르도가 그린 그림이 바로 <앙기아리 전투>다. 다만 그림을 완성하지는 못했고 위 그림은 벽화의 중심 부분만 묘사한 것이다. 그런데 1540년에 베키오 궁전이 개조되면서 벽에 다른 프레스코화 <마르시아노 전투>가 그려지는 바람에 지금은 사라진 그림...인 줄 알았는데,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마르시아노 전투>의 일부 뒤쪽에 <앙기아리 전투>의 일부가 남아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마르시아노 전투>를 떼어 내 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겠지만, 관련 단체들이 벽화를 훼손하는 행위라며 반발해서 현재 그냥 그대로 전시되고 있는 상태이다.], ''Battaglia di Anghiari''[* 앙기아리 전투. 해당 전투에 관한 내용은 아래에 후술.], 1503-1504, [[어쌔신 크리드: 이니시에이츠]] 中}}} || 한편 당시 이탈리아는 롬바르디아 전쟁(Guerre di Lombardia)이 한창이었다. 당시 [[교황령]]과 [[피렌체 공화국]] 두 세력과 동맹을 맺은 [[베네치아 공화국]]은 북부 이탈리아를 두고 [[밀라노 공국]]과 대립하면서 패권 싸움을 하고 있었는데, 이 때 벌어진 전투 중 하나가 앙기아리 전투(Battaglia di Anghiari)이다. 1440년 동맹군은 토스카나의 작은 도시인 앙기아리에 집결했는데, 당시 동맹군의 병력은 추기경 루도비코 트레비산이 이끄는 교황군 4,000명, 피렌체군 4,000명, 그리고 미켈레토 아텐돌로[* 본명은 미켈레 아텐돌로(Michele Attendolo). 유명한 용병대장 무치오 아텐돌로 스포르차의 조카이자 밀라노 공작이 된 것으로 유명한 콘도티에로 프란체스코 스포르차의 사촌이다. 여담이지만,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 결정판]]의 캠페인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 결정판/캠페인 공략/스포르차|스포르차]]에서 화자로 나오는 인물이기도 하다.]가 이끄는 베네치아군 중기병 300명이었다. 동맹군의 집결 소식을 들은 밀라노 공국은 동맹군을 치기 위해 밀라노 공작 필리포 마리아 비스콘티의 명령으로 당시 이름을 떨쳤던 용병 니콜로 피치니노의 지휘 아래 앙기아리로 군대를 보냈다. 밀라노군은 승리를 확실히 쟁취하기 위해 동맹군보다 훨씬 많은 병력을 데리고 온 상태였고, 거기다가 6월 28일 앙기아리에 도착한 후 근처 마을인 산세폴크로에서 2,000명의 병력을 추가로 얻어 수적 우위를 점했다. 밀라노군은 전투 준비가 덜 된 동맹군을 치기 위해 바로 다음날인 6월 29일에 공격을 감행하기로 했다. 당시 6살이었던 마리오는 아버지와 함께 몬테르키로 여행을 가던 중 앙기아리에 모인 동맹군을 보게 되고[* 앙기아리와 몬테르키의 거리는 10km가 채 안된다.], 일종의 군대 견학을 하던 마리오는 미켈레토를 만나게 된다.[* 군 부대에 어떻게 민간인이 들어올 수 있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아디토레 가문]]이 암살자 가문임에 따라 마리오의 아버지도 싸우는 법을 배웠을 가능성이 크므로, 아버지가 미켈레토를 돕기 위해서 베네치아군에게 접근한 것이고 마리오는 그런 아버지를 따라간 것이라는 추측도 있으나 밝혀진 바는 없다.] 그런데 마리오가 미켈레토에게 저쪽에서 흙먼지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렸는데, 미켈레토가 확인한 결과 산세폴크로와 자신들이 있는 앙기아리를 연결하는 도로 저편에 정말로 흙먼지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밀라노군이 기습을 감행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던 것. 덕분에 미켈레토는 동맹군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전투에 대비할 수 있었고, 4시간에 걸친 전투 끝에 마침내 동맹군이 승리를 거머쥐었다.[* [[니콜로 마키아벨리(어쌔신 크리드 시리즈)|니콜로 마키아벨리]]는 자신의 저서에서 이 전투를 두고 다음과 같이 평했다. '동맹군의 승리는 밀라노 공작이 입은 피해보다 피렌체군이 얻은 이득이 더 컸다. 만약 밀라노군에게 점령당했다면 토스카나가 전부 공작의 것이 되었겠지만, 그가 패함으로써 입은 피해는 말과 군 장비만 여럿 잃은 것 뿐이다. 이는 큰 비용 없이 전부 다시 보완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런데 이후 마리오는 몬테리지오니에서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는데, 피렌체 공화국이 틈만 나면 몬테리지오니를 빼앗으려고 쳐들어와서 그 때마다 방어를 해야 했기 때문. 마리오가 앙기아리 전투에서 피렌체군이 속한 동맹군을 도와준 것을 생각하면 마리오 입장에서는 괘씸했을 듯... ~~게다가 통치자가 그 [[메디치 가문]]이다.~~[* 다만 이 때의 메디치 가문은 [[아디토레 가문]]과 이렇다 할 인연이 없었다. 1455년 동생 지오반니가 피렌체에서 은행가로 일하고 있을 때, 강물에 빠져 죽을 위기에 처한 6살의 [[로렌초 디 피에로 데 메디치|로렌초 데 메디치]]를 구해준 후 그 때부터 두 가문 사이의 관계가 끈끈해진 것이다. 이는 [[어쌔신 크리드 2]]에서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디치 가문은 [[에지오 아디토레]]가 죽은 후에도 수십 년이 지나도록 계속 공격을 해대서 결국에는 점령하기에 이르긴 하지만, 아디토레 가문과의 인연을 생각해서 아디토레 가문이 계속 통치할 수 있게 허락해주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